작성일 : 18-12-28 11:14
수원 토박이 축구선수를 소개합니다...
 글쓴이 : 참아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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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팀, 우리 선수] ⑨ 시련을 기회로 바꾸려는 이효철



(베스트 일레븐)

시련을 발전의 기회로 바꾼 사내, 다시 희망을 노래하다
가톨릭관동대학교 FW 이효철

올해 대학 무대서 돌풍을 일으켰던 가톨릭관동대학교를 기억한다면, 그 팀의 11번이자 주축 공격수 이효철의 인상 깊은 플레이를 잊기 어려울 것이다. 그만큼 이효철은 최근 대학 무대서 펄펄 날고 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대다수의 축구 팬에겐 그의 이름도, 그가 뛰는 무대도 아직은 생소할 수밖에 없다. 이효철이라는 이름이 아직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은 이유이자, 그렇기에 앞으로는 보다 많은 사람이 알게 되리라 기대하는 이유다.

이효철은 초등학교 3학년까지는 수영 선수였다. 하지만 그는 수영이 힘들었고, 그럴 때마다 짬을 내 하던 축구에 더 많은 희열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사실 안 힘든 운동은 없잖아요, 그런데 축구를 할 때는 확실히 달랐어요. 축구를 하면 매번 칭찬받고, 또래들보다 못한다는 이야기는 안 들었거든요. 그래서 더 신나고 욕심도 생겼던 것 같아요.” 그의 말대로, 그는 축구로 무대를 옮긴 뒤 더 펄펄 날았다. 수원에 있는 ‘홍명보 어린이 축구 교실’ 창단 멤버로 시작해 일취월장했고, 수성중과 수원고를 거치며 에이스로 자리 잡았다. 엘리트 코스를 밟을 만큼 완벽한 성공은 아니었어도, 큰 슬럼프나 위기 없이 착실히 성장했던 셈이다.

그러나 정작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볼 수 있는 대학 진학 즈음에 난관이 찾아오고 말았다. 그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했던 명문대 감독이 문제가 생겨 그의 입학도 없던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결국 그는 과거 자신에게 관심을 표했던 감독이 있는 가톨릭관동대로 부랴부랴 옮겨 진학했다. 그러나 진학 직후, 그 감독마저 다른 팀으로 막 옮겨가 버리고 말았다. 걸림돌 없이 전진해오던 그는 하루아침에 ‘낙동강 오리알’이 됐다.

그는 대학교 1학년 시절엔 거의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늘 팀의 간판 노릇을 해오던 그로선 인생 첫 위기이자, 자신의 축구 커리어 자체가 끝날 수도 있던 힘든 시간이었다. “갑자기 팀을 옮긴 데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강원도에 혼자 오고, 경기는 경기대로 못 뛰고, 정말 모든 게 힘들었던 시기였죠. 한때는 ‘나는 프로를 꿈꾸는 사람인데, 대학에서도 자리를 못 잡을 정도면 축구를 계속하는 게 맞나? 축구를 그만해야 하나’란 생각까지 했어요. 내가 더 잘할 수 있는데, 기회가 안 주어지는 것에 억울하기도 했고요.” 그는 이 시기를 이렇게 회상했다.


그러나 이효철은 그대로 주저앉지 않았다. 경기에 나서지 못했던 시간들을 반전의 계기로 삼았다. ‘내가 진짜 실력이 모자라서 못 뛰는 게 아니라면, 내가 포기할 이유는 더욱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훈련했다. 그러니 보이는 게 있었다. 그는 “밖에서 보니 안에서 뛰기만 할 때는 못 보던 게 보였어요. 시야도 더 넓어졌고, 여유도 생겼죠. 벤치에서 ‘아, 왜 저기서 저렇게 플레이를 하지’라고 느꼈던 것들을 나중에 들어가서 뛸 때 써먹기도 했죠”라고 말했다. 이후 이효철은 2학년부터 조금씩 경기에 나서기 시작했고, 경기에 못 뛰었던 시간 얻은 것들이 더해지며 오히려 더 좋은 플레이를 하기 시작했다. “못 뛰는 동안, 살아남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했어요. 확실한 무기 하나를 만들어야 한다고 느꼈어요. 제가 신장은 작지만 달리기가 빠른 편입니다. 그래서 3학년 춘계 때 중앙 공격수로 포지션을 이동한 뒤, 나가는 척하고 돌아서 들어가는 패턴으로 좋은 결과를 만들었죠.”

이뿐 아니다.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에게 힘이 되고 싶었던 부모는 성공한 축구 선수의 자서전을 몽땅 뒤져가며 해결법을 제시했다. 그 역시 부모의 제안대로 군말 없이 따랐다. 결국 그는 무명 시절 발전을 위해 줄넘기 2단 뛰기를 매일 1,000개씩 했다는 이영표의 사례를 보고, 좀 더 나아가 하루에 1,100개씩 했다. 이 줄넘기는 경기를 못 뛰던 대학교 1학년을 포함해, 대학교 4학년 때까지 하루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덕분에 그는 확실한 장점을 갖췄고, 그 장점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도 정확히 아는 특색 있는 공격수가 됐다. 그는 그렇게 외로웠던 가톨릭관동대에서 다시 에이스로 거듭났다.

하지만 그에겐 시간이 많지 않다. 다음 목표인 프로 무대를 위해 여기저기 테스트를 봤지만, 프로 진출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몇몇 프로팀이 테스트에서 엄지를 치켜세웠음에도, 입단은 여전히 바늘구멍이었다. 그는 곧 소속팀이 없어진다는 생각에 초조하기는 하지만, 자신감만은 잃지 않은 채 기회를 노리고 있다. “프로 무대는 막연하게 꿈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직접 부닥쳐 R리그 등을 뛰어 보니 ‘나도 이 무대에서 뛸 수 있겠구나'란 자신감과 욕심이 생겨요. 힘들었던 대학교 1학년 시기도 지금 돌이켜보면 발전할 수 있었던 더 좋은 계기가 됐던 것처럼, 어려운 지금도 좋은 결과로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어느 팀이라도 좋으니까, 들어가서 청소만 해도 좋으니까, 기회만 얻을 수 있다면 꼭 제 가치를 입증하고 싶어요.”

자신을 덮쳤던 큰 고난을 도리어 성장의 동력으로 삼았던 이효철이기에, 지금 닥친 이 시련의 시간도 또 다른 동력으로 만들어 내리라 믿는다.

※ ‘우리 팀, 우리 선수’는 유명하지 않으나, 한국 축구의 구성원으로 열심히 땀 흘리고 있는 우리 주위의 팀과 선수를 찾아 조명하는 코너다. 지금은 음지에 있는 그들이 성장해, 언젠가 밝은 양지로 나왔으면 하는 바람도 함께 담았다./ 편집자 주

글=안영준 기자(ahnyj12@soccerbest11.co.kr)
사진=이호철 제공